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5/07 23:06:23
Name 망고가게주인
Subject [일반] [5월] 엄만 왜 그래?
이 이야기는 표현이 서툰 아들과 말론 표현하지 않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5월 6일 10:10 PM]

"동생들아 내일 점심에 뭐해? 어버이날이니까 밥 먹게"
나는 동생들을 카톡방으로 불러 모았다. 5월 8일에 출근하게 되는 바람에 하루 전에 밥이라도 같이 먹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오빠 어디 생각해 둔 데 있어?"
"아니 없어, 그냥 드시고 싶은데 물어봐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부쩍이나 건강에 신경 쓰시는 우리 부모님. 특히 먹는 것엔 철저하셔서 어느 식당이 신선한 재료와 건강한 음식을 파는지 누구보다 잘 아신다. 고기나 패밀리 레스토랑은 정말 싫어하신다. 그러니, 내가 어딜 알아보는 것보단 부모님이 원하시는 곳이 낫겠다 싶었다.

"엄마 아빠~ 내일 점심시간 괜찮죠?"
"응 별 건 없는데?"
"그럼 내일 같이 나가서 밥 먹어요"

TV를 보고 계시던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 집에 대화가 사라진 지.. 부모님은 TV 보는 게, 나는 방에서 핸드폰 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간단한 안부 인사 빼곤 서로의 얼굴을 보기보단, 드라마 주인공의 얼굴을, 피지알 유머 게시판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 얼굴 보며 이야기 좀 해야지..' 나름의 다짐을 하고 잠이 들었다.




[3월 3일 늦은 오후]

"엄마, 난 왜 이래?"

TV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답답한 내 마음을 표현했다. 엄마는 딱히 내게 눈길을 주진 않았다.

"면접관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패기가 없데.
본인의 성격이 어떤 것 같은지 설명해보래. 자기는 내가 소극적으로 보인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우리 엄마는 맞장구쳐주는 스타일은 아니시다.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나는 욱하며 평소에 담았던 생각을 내뱉어버렸다.

"엄마, 난 왜 이래?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엄마 닮아서 이런 거 같아 진짜..."

"너는 왜 안 좋은 건 항상 엄마 닮았다고 하니?"

엄마 기분이 상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이었고 아차 싶었다. 사실 아빠랑 엄마는 성향이 정반대다. 나는 엄마를 닮았는지 내향적이었고 그걸 깨려고 노렸했지만 내향적이라 마음속 다짐만 계속했다. 고등학교 때 시작한 타국 생활이 전환점이 되긴 했지만 졸업 후 돌아온 한국. 그리고 낯설고 긴장된 한국 기업에서의 면접은 예전의 나로 되돌려버렸다. 한 달이 지나면 취준 2년째인 상황도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건 변명에 불과했고 난 엄마가 받았을 상처를 보듬어주긴 커녕 집을 박차고 나갔다.




[5월 7일 11:00 AM]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늦잠을 잤다. 찌뿌둥함 몸을 일으키며 정신을 차리려는데 보글보글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었더니 찌개가 끓는 소리였다.

"엄마..."

요리에 열중하신 엄마는 대답이 없으시다. 된장찌개에 온갖 채소. 아는 분한테 받았다며 간장게장까지 밥상에 올라왔다. 분명 어제 외식한다고 말씀드렸건만 밥상이 너무 정성스레 차려져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자꾸 맛있는 부분만 내 밥공기 위에 올려주신다. 시선은 TV에 향해 있지만 게다리를 바르는 엄마의 손놀림은 바쁘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왠지 느껴졌다. 이제 막 한 달 차에 접어든 신입 사원 생활, 자취하며 밥도 못 챙겨 먹는 내게 맛난 밥 먹이고 싶은 마음에 아니었는지. 밥맛 없으면 게장 국물을 말아먹으라며 한사코 거절했던 게장 국물을 받아들고 조금 전 집을 나섰다.



진짜..  엄만 왜 그래?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Deadpool
16/05/07 23:12
수정 아이콘
엄만 다 그래요..ㅜㅜ
Thursday
16/05/09 15:21
수정 아이콘
사랑받는 기분 들어서 좋을 것 같네요. 부러워요.
다대리
16/05/09 15:29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는 웃어도 되는거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7415 [일반] 리버풀감독 위르겐 클롭의 인터뷰 발언이 파이어났군요. [78] naruto05113330 16/09/04 13330 1
67414 [일반] 어느 역무원의 하루 ㅡ 땜빵맨 [15] 부끄러운줄알아야지5645 16/09/04 5645 8
67413 [일반] 악어떼 [1] 쎌라비3266 16/09/04 3266 0
67412 [일반] [스포츠] 군복무에서 돌아온 그들 변수가 될 수 있을까 #1. 경찰청 [37] 인사이더6538 16/09/04 6538 0
67411 [일반] 안녕하세요 가입인사 드립니다 [33] 보들보들해요5302 16/09/04 5302 11
67409 [일반] 스포츠/연예 게시판(가칭) 관리자를 뽑습니다. (지원 현황 2/7) [31] OrBef7261 16/09/04 7261 4
67408 [일반] [데이터 약주의] 바르바로사 작전 (10) - 중부 집단군 (2) [11] 이치죠 호타루6614 16/09/03 6614 6
67406 [일반] 구글의 프로젝트 "아라(Ara)"가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네요... [34] Neanderthal12470 16/09/03 12470 2
67405 [일반] 북경대 교수 "사드 배치의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의 핵개발" [25] 군디츠마라7922 16/09/03 7922 8
67404 [일반] 오늘 발표한 정의당 당내논쟁과 관련한 특별 결의문 [211] 아리마스16085 16/09/03 16085 5
67402 [일반] 음악은 아나? [10] 시지프스4707 16/09/03 4707 1
67401 [일반] [MLB] 올시즌 아시아인 타자들 현재까지 성적 [44] 비타10008958 16/09/03 8958 2
67400 [일반] 댓글은 소통인가? [37] 어강됴리8163 16/09/03 8163 7
67399 [일반] 메갈리안 이슈는 왜 유독 이렇게 크게 폭발했는가 [58] 연환전신각10693 16/09/03 10693 22
67398 [일반] 남자는 며칠 후에 입대한다고 말했다. [3] 헥스밤4849 16/09/03 4849 18
67397 [일반] 고양이와 두꺼비는 왜 밤눈이 밝은가? [19] Neanderthal8214 16/09/03 8214 24
67396 [일반]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독후감) [18] 너른마당8225 16/09/02 8225 2
67395 [일반] 결혼합니다. [175] 열혈둥이13000 16/09/02 13000 161
67394 [일반] 내가 요즘 꽂힌 미국 오디션 프로 , 더 보이스 us ( 스포 ) [6] Survivor8307 16/09/02 8307 0
67393 [일반] 내 눈은 피해자의 눈, 내 손은 가해자의 손 [17] 삭제됨9228 16/09/02 9228 1
67391 [일반] 짜장 나눔합니다.(종료) [79] stoo7590 16/09/02 7590 5
67390 [일반] [야구] 한화의 수비력은 왜 다시 무너졌을까? [47] 이홍기9766 16/09/02 9766 2
67389 [일반] 갤노트 7, 19일부터 신품으로 교체예정 [188] 법규14630 16/09/02 14630 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