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8/02 08:12:24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52
Subject [일반] 살별 혜(彗)에서 파생된 한자들 - 빗자루, 작음 등

지난 글에서 소개한 깃 우(羽)의 갑골문은 羽의 전국시대 이후 형태와 차이가 많이 난다. 한때는 羽의 갑골문이라고 본 글자는 실제로는 彗(살별 혜)의 갑골문으로 현재는 해석한다. 이 글에서는 彗와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겠다.

彗의 시간에 따른 변화는 다음과 같다.

66a4d8dda16fd.png?imgSeq=31460

살별 혜(彗)의 갑골문(a),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b), 설문해자 고문(c), 설문해자 소전(d), 설문해자 혹체(e).

彗a는 빗자루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彗b는 彗a의 위에 竹(대나무 죽)을 얹은 것으로, 빗자루를 대나무로 만든다는 의미를 더한 것이다. 彗c는 彗a 대신 習(익힐 습)을 얹은 것이다. 習이 소리를 나타낸다고 하기에는 '습'과 '혜'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뜻을 나타내기 위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 말인즉슨 習은 빗자루와 관련 있는 한자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習은 새가 깃털을 익숙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彗c가 彗b에 白(흰 백)을 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만큼, 習은 彗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글자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면 習의 위에 있는 羽는 실은 彗a가 와전된 것이다. 다시 말해, 習은 羽에서 파생된 글자가 아니고 빗자루를 뜻하는 彗에서 파생된 글자인 것이다.

彗d는 빗자루를 잡고 있는 오른손을 뜻하는 又(또 우)를 더한 것으로, 바로 지금의 彗의 직계 조상이다. 《설문해자》에서는 위쪽에 있는 글자를 生(날 생) 2개로 보았지만, 실제로는 빗자루 모양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彗의 자형은 위를 生 2개로 쓰지 않고 彗a를 계승한 형태라는 점이 다행이다.

彗e는 彗d 위에 竹을 얹은 것으로, 彗b를 彗a에서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彗의 원래 의미는 빗자루고, 하늘을 빗자루처럼 쓸고 가는 살별, 곧 혜성도 뜻하게 되었다.


彗(살별 혜, 혜성(彗星), 혜소(彗掃) 등, 어문회 1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雪이 彗에서 파생된 것이 뜻밖일 분들도 있을 것 같다. 본자가 䨮이고, 지금의 정자 雪은 䨮의 약자니까. 필자도 몰라서 놓칠 뻔했다. 정작 이 글자가 彗의 파생자 중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라는 게 아이러니.

彗+口(입 구)=嘒(반짝거릴 혜): 혜피소성(嘒彼小星) 등. 어문회 특급

彗+心(마음 심)=慧(슬기로울 혜): 혜안(慧眼), 지혜(智慧) 등. 어문회 준3급

彗+日(날 일)=暳(별반짝거릴 혜): 혜피소성(暳彼小星) 등. 어문회 준특급

彗+雨(비 우)=䨮→雪(눈 설): 설산(雪山), 강설(降雪) 등. 어문회 준6급

66a5fe55bdb67.png?imgSeq=31568

彗(살별 혜)에서 파생된 한자들.


雪도 彗만큼이나 오래된 한자다.

66a5de5b1a501.png?imgSeq=31564

왼쪽부터 눈 설(雪)의 갑골문, 금문, 소전, 해서.


갑골문을 보면 위는 비 우(雨), 아래는 위에서 설명한 彗a임을 알 수 있다. 금문은 지금의 彗인 彗d로 바뀌어 있고, 그게 소전까지 내려왔다 해서가 되면서 又만 남아 변형된 게 지금의 雪이다. 아마 이 雪이 彗a가 羽가 아닌 彗의 갑골문임을 증명하는 실마리가 되었을 것 같다. 눈이 내리면 손으로 빗자루를 잡고 쓸어야 하는데, 그 원래의 문자에서 빗자루가 빠져서 지금은 손으로 치운다는 의미만 남은 셈이다.


흥미롭게도, 彗가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들 중에는 '작다'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많다. 雪은 빗자루로 쓸어버릴 물건이라는 뜻이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嘒는 반짝거리다 외에도 '작은 소리'라는 뜻이 있고, 暳도 '작은 별'이라는 뜻이 있다. 한자 급수 시험에는 나오지 않지만, 彗에 木(나무 목)을 더한 槥(널 혜)는 작은 널을 말하고, 彗에 糸(가는실 멱)을 더한 (糸+彗)(가는베 세)는 촉에서 만든 가는 베를 뜻하고, 彗에 鼎(솥 정)을 더한 䵻(작은솥 세)도 작은 솥을 말한다. 어쩌면 혜성은 작은 별이기 때문에 彗에서 파생된 한자들도 다들 작은 물건을 가리키게 된 것이 아닐까.


또 한 가지 특징은 彗를 성부로 쓰는 한자는 거의 대부분 彗를 慧로 바꿔쓸 수 있다는 것이다. 嘒를 嚖로, 槥를 櫘로, 暳를 㬩로, (糸+彗)를 (糸+慧)로, 雪을 雨+慧로, 䵻를 (鼎+慧)로 써도 된다. 둘 다 음이 '혜'이니 형성자의 성부로 바꿔쓸 수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형성자의 성부를 이렇게 자유롭게 바꿔 쓸 수 있는 짝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 글자도 아니고 여러 글자에 규칙적인 교체가 가능하다는 건 더 흥미롭다.


嘒, 暳의 용례로 든 혜피소성은 시경에 있는 소성(小星), 그러니까 '작은 별'이라는 제목의 시의 첫 구절로,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는 뜻이다. 시경은 고대부터 정리한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었는데, 크게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을 전한 시대에 기록한 금문시경이 있고 공자의 집을 허물 때 나온 전국시대 문자로 적은 고문시경이 있다. 금문시경 중 한영이라는 사람이 정리한 《한시》에서는 暳를 썼고, 고문시경에서는 嘒를 썼다.

안후이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국시대 죽간, 일명 안대간에도 이 시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혜피소성을 계피소성(季皮少星)이라고 적었다. 먹는 계피가 아니고, 이 계(季)는 고대에는 은혜 혜(惠)와 서로 바뀌어 쓰인 적이 있으며 惠는 '밝다'는 뜻으로는 慧와 상통한다. 그래서 이 계피소성은 혜피소성으로 읽을 수 있다.

嘒는 《설문해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은 소리다. 입 구(口)가 뜻을 나타내고 살별 혜(彗)가 소리를 나타낸다. 《시경》에 이르기를, '반짝반짝 작은 별'(嘒彼小星)이라 한다. 혹 嚖는 슬기로울 혜(慧)를 쓴 것이다.

분명히 嘒의 뜻을 '작은 소리'라고 하면서, 그 뜻이 아니라 별이 반짝거린다는 뜻으로 쓴 시경의 구절을 예문으로 가져오고 있다. 과연 '별이 반짝거린다'를 뜻하는 한자는 원래 嘒일까 暳일까?

嘒의 뜻과 구성에 주목해서, 口가 뜻을 나타내고 작은 소리란 뜻이니 嘒가 暳를 가차한 것이다.

출전에 주목해서, 嘒가 먼저 만들어진 한자고 暳는 嘒에서 나중에 분화한 것이다.

66a5d87d9ed2e.png?imgSeq=31557

그런데 字統网이라는 웹사이트에서는 위와 같은 글자를 暳의 갑골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왼쪽은 日이고, 오른쪽은 彗의 갑골문에 있는 빗자루 한 쌍 중 하나와 비슷하다. 그래서 日+彗니 暳인 것이다. 반면 嘒는 아직은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暳가 嘒보다 먼저 만들어졌고, 嘒는 暳를 가차해서 쓰였을 것이다.


저 빗자루 한 개를 보고, 빗자루 추(帚)를 떠올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저렇게 생긴 帚의 갑골문도 있다.

66a5da1ba1650.png?imgSeq=31558

帚의 갑골문 중 하나. 출전: 小學堂

그러면 저 暳의 갑골문으로 제시한 한자는 日과 帚가 결합한 㫶(밝을 주) 아닐까 싶기도 한데, 㫶가 선진시대에 쓰인 예문이 전혀 없을 뿐더러 양한시대 이후에도 눈 씻고 찾아봐도 쓰인 적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일단은 별이 반짝거리다는 뜻의 한자는 暳가 원조였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겠다.


彗와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는 다음과 같다. 형성자의 성부로서 彗와 慧의 대칭 관계도 포함했다.

66a602cba876d.png?imgSeq=31570

彗의 파생자들의 의미 관계도. ⿱는 한자를 구성 요소들로 나타내기 위한 글자로, ⿱AB는 A가 머리에, B가 밑에 있는 글자를 가리킨다.


요약

彗(살별 혜)는 빗자루의 모양을 본뜬 한자로, 나중에 빗자루를 잡은 손이 추가돼 지금의 모양이 되었으며 빗자루를 닮은 혜성도 뜻하게 되었다.

彗에서 嘒(반짝거릴 혜)·慧(슬기로울 혜)·暳(별반짝거릴 혜)·雪(눈 설)이 파생되었다.

彗는 파생된 한자들에 '빗자루', '작다'의 의미를 부여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8/02 11:37
수정 아이콘
오 눈설자는 진짜 상상 못했네요.
빗자루로 눈을 쓰는 개념에서 파생됐나보네요
계층방정
24/08/02 21:41
수정 아이콘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놓칠 뻔 했습니다. 또는 하늘에서 내리는 별똥별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까요.
24/08/02 13:26
수정 아이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08/02 21:41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5055 [정치] 무안공항 사고 관련으로 지난주에 SBS에서 기사를 내놓았는데 조사위원회가 사과를 한 게 있네요 [42] petrus9405 25/09/24 9405 0
105054 [일반] 여우와 사자의 전쟁 [1] 식별3931 25/09/24 3931 6
105053 [일반] [스포] 체인소맨 극장판 - 레제편 후기 [65] 한뫼소10705 25/09/23 10705 8
105052 [일반] 크라임씬 제로 1-4화 후기 (줄거리 언급 없음) [26] wannabein6595 25/09/23 6595 4
105051 [일반]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의 연관성 논란 [68] 여왕의심복11856 25/09/23 11856 74
105050 [정치] 국민의힘: 25일 본회의 상정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 [180] 다크서클팬더13893 25/09/23 13893 0
105049 [정치] [NYT] 김정은: 비핵화 요청 안하면 미국과 대화 가능 [63] 철판닭갈비8426 25/09/23 8426 0
105048 [일반] 일본 극우 성향 유튜버 [161] 요케레스13323 25/09/23 13323 1
105047 [일반] 트럼프 "美자폐증 급증은 타이레놀 탓… 쿠바는 자폐없어" [131] 유머12451 25/09/23 12451 4
105046 [일반] 베르세르크 '매의 단' 모티브가 된 '백색용병단'을 알아보자 [4] 식별3660 25/09/23 3660 10
105045 [일반] 나의 물 생활 이야기~ (스압) [22] BK_Zju4546 25/09/23 4546 29
105044 [일반] 박찬욱은 봉준호의 꿈을 꾸는가 - “어쩔수가없다”(노스포) [14] 젤다6804 25/09/22 6804 2
105043 [일반] 15kg 감량하고 10km 달리기 완주하기까지 [38] Kaestro5432 25/09/22 5432 23
105041 [일반] 잇섭 아이폰 17 케이스 사과문 [40] Leeka7997 25/09/22 7997 6
105040 [정치]  [조선일보 사설] 韓 산업 다 잡은 中 굴기 주역은 기업 아닌 유능한 공산당 [187] 베라히9956 25/09/22 9956 0
105039 [일반] 실제 중세 전장에서의 기사도는 어땠을까? [7] 식별4246 25/09/22 4246 14
105038 [일반] 복리에는 기억이 필요하다: 한국이 퇴직연금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 [54] 전상돈8396 25/09/22 8396 29
105037 [일반] 강릉보다 더 심각한 가뭄 사태를 국가단위로 겪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60] 독서상품권10866 25/09/22 10866 2
105036 [일반] [풀스포]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 "사연의 칼날" [16] Farce5530 25/09/21 5530 8
105035 [일반]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6] 식별6540 25/09/21 6540 22
105034 [정치] 의미 없는 발의가 너무 많은 국회 [88] 짭뇨띠12703 25/09/21 12703 0
105033 [일반] 협박,모욕죄 합의 해줄려했는데 상대편이 얼렁뚱땅 넘어갈려하네요. [45] 그때가언제라도13519 25/09/21 13519 4
105032 [일반] 특별한 경험 [12] Tiny Kitten5599 25/09/21 5599 1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